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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미니의 방방곡곡 여행

[마포] 석유비축기지에서 시민을 위한 문화비축기지로 도시재생, 콘크리트 속 쓸쓸함과 아름다움의 반복


진~~짜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서울 출사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장소란 없다고 포기하려고 할 때 눈에 딱 들어왔던 문화비축기지.

제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없었던 시설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서울 가볼 만한 곳'을 네X버에 검색했더니 나오더라구요.

친구는 서울에 사니까 한 번 가봤다고는 하는데, 저도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친구랑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원래 뭐 하던 곳인지도 모르고, 그냥 이름이 신기하고 예뻐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딱 들더군요.



도착하면 흡사 군사시설 '벙커'같이 생긴 것들이 산에 박혀있어서, 서울에도 벙커가 있을 법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엄밀히, 말하면 벙커긴 벙커인데 석유를 위한 벙커이긴 하지만요.

겨울이라 그런지 콘크리트 외벽이 산림에 가려지지 않아서 더욱 휑해보이고 차가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총 5개의 탱크가 있는데, 시민에게 개방되어 모두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일부는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도록 리모델링 되었습니다.

저는 설명이 있는 박물관 쪽을 맨 마지막으로 가서, 궁금증을 안고 관람해서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갔던, T1( 파빌리온) 가솔린 탱크는 내부가 훤히 보이도록 개조되어 산의 암벽과 내부 콘크리트를 훤히 볼 수 있었습니다.



콘트리트 벽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귀엽다고 해야되나...쓸쓸하다고 해야하나

저는 개인적으로 차가운 공간에, 찬 소재인 콘크리트 위 돌로 그려낸 그림이 섬뜩했습니다.

둥그런 구조에 위가 뚤려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흡사 제주 4.3 평화공원 내부 백비가 있던 공간의 아픈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차갑고, 어둡고, 위험한 시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자 관련된 내용을 문화비축기지 이곳저곳에 넣어뒀더군요.

산업시대의 역군들의 노고와 고통을 잊지 않고 기리며, 현대의 문화 유산도 지켜나가려는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파빌리온의 바깥이 차가웠다면 내부는 따듯한 감싸주는 느낌을 주는데 라이트 아트를 추가하여, 미술관에 온 착각을 일으킵니다.

상당히 작은 공간에 보기도 힘들게 해놨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내부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공간이었습니다.

근데, 막상 보고 나오니 탱크가 이렇게 다 작나? 싶기도 했구요.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T2(야외공연장)입니다.

여기도...제가 차가운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공연장이라는 것을 알고 보고도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떠올랐습니다.

모두 다른 높이의 사각형 돌이 배치되어 있는 공간 자체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은 저뿐일까요.(이상하리만치 아픈 공간으로 기억되도록 장치를 해놨다는 느낌이 들정도)

여름에 밤에 더울 때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서울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문화 장소로 사용될 생각을 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기도.



T3(구 석유비축 탱크)는 원형 그대로의 탱크가 보존되어 있는 시설입니다.

보존을 이유로 내부 출입은 불가하고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철제 발판 위에서 아래의 깊이와 탱크의 녹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옆에 계단이 있어서 내려갈만한 높이로 착시현상이 일어나는데, 

실제 높이는 웬만한 아파트 7~8층 정도의 높이 정도로 느껴집니다.

옆에 아버지랑 온 아이는 무서워서 잘 올라가지 못하더라구요.

옆쪽엔 이 어두운 시설을 관리하시던 분의 회고가 남겨져 있는데, '야간엔 무섭고 축축하고, 옆 쓰레기 매립지때문에 파리도 많고...'

이런 힘들었던 기억에 대한 내용이 남아있었습니다.



실제로 낮에 가도 어두운 곳은 으쓱합니다. 깊이가 엄청나기도 하니까요.

또한 곳곳에 위험시에 누를 수 있는 비상벨이 배치되어, 어둡고 으쓱한 공간에서 일어날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도 해두었습니다.

어느덧 T4(복합문화공간) 건물에 도달했습니다. 외벽콘크리트를 따라 걸으며 이곳을 관리하시던 분들의 오싹함을 나름 느끼기도 하고,



T3에서 볼 수 없었던 아래쪽 모습을 신기하게 보던 중.

철문과 조우헤서 들어갈 수 있나 왔다갔다 하는데 갑자기 철커덩하면서 열려서 친구랑 저랑 정신 혼미해져서 넘어질 뻔 했습니다.

안에서 계속 물소리랑 철컹철컹 소리가 나서 인위적으로 이 곳을 관람하는 사람에게 당시의 기억을 보여주려고 했었던 건가 싶었는데,

안에 철문 철커덩 열리면서 전시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니...후 한숨 깊게 쉬고 들어갔습니다.

내부는 어둡게하여 빛과 소리를 통해 당시의 모습과 회고를 돌아다니며 들을 수 있게 되어있어서 외부와 달리 더 으쓱했습니다.



그렇게 다 둘러보고 나오니 드디어...T5(석유기지 역사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모르면서 느껴왔던 것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알아가는 시간으로 왜 이런 느낌을 받게 되게 만들었는지, 용처는 무엇이었는지 등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석유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될 때, 서울 시민이 1달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을 저장 할 수 있는 석유비축기지를 만들게 되었고, 2002년 월드컵을 이후로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시민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되어 현재의 문화비축기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깔끔한 전시물과 비교적 현대의 문화유산이라 다양한 자료를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앞서 강조하고자 했었던 산업화 시대의 역꾼들의 외로움, 쓸쓸한 분위기에 대한 설명도 있었지만,

주가 되었던 것은 건축의 목적성이나 리모델링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많아서 다소 아쉬웠습니다.

  


다 보고 밖으로 나오면, 상암소셜박스도 있었는데 제가 갔을 당시에는 운영되고 있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따듯했었던 날씨에 비해 상당히 차가운 느낌을 많이 받았던 문화비축기지.

제가 설명한 공간 이외에도 곳곳에 내부 강연장, 카페 등 가족 단위로 많이 와서 즐길 수 있도록 준비되어있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다만, 주차장 크기가 협소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월드컵경기장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옵니다.)


이것으로, 스물 여덟 번째 방방곡곡 여행 때밀이를 마칩니다. 탁!